그런데 '한국어식'이란?과 우리말교에 핑백, 트랙백 보냅니다. Clockoon님의 글을 보고 생각이 떠올라 몇 자 적습니다. 이하 반말.
1. 걱정
어떠한 표현 양식이 '번역투'라 불리는 까닭은, 보다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려는 기능적 목적 때문에 문장구조의 자연스러움이나 정형성을 좀 희생했기 때문이다.혹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릇된 생각이다. 어떠한 표현 양식이 번역투라 불리는 까닭은, 해당 언어에 이미 간편하고 안정된 표현 양식이 존재하는데 이를 대신한 것이 자연스럽지도 않으면서 기능적으로도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부자연스러움과 불편함은 그 표현자의 언어적 소양에서 비롯한다. 이 언어적 소양은 그를 둘러싼 대중 매체와 주로 접하는 학술 자료, 또는 생활 환경에 의해 정밀하게 고착된다. 애초에 정말로 유일한 이유가 강력한 기능적 필요에 따라서였다면 그 번역투는 언중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근히 그리고 비교적 신속하게 확산되며, 기존의 표현을 쓸모 없게 만든다. 즉 번역투라고 지적되지도 않는다.
2. "한국어식"이란
우선 통용되는 "한국어"를 거칠게 정의하면 "남한 지역 사회에서 통용되는 표준말과 방언을 포함하는 언어군"이다. 이 정의에는 정치적인 세부사항을 배제하였다. 한편 "무슨어식"이란 표현이 가리키는 것은 어떤 언어를 사용할 때 구조, 문장, 어구, 낱말, 형태소, 음소 각 단위에서 나타나는 정형성 또는 규칙성"이다.정리하면 "한국어식"이란 "남한 지역 사회에서 통용되는 표준말과 방언을 포함하는 언어군을 사용할 때 구조, 문장, 어구, 낱말, 형태소, 음소 각 단위에서 나타나는 정형성 또는 규칙성"이다. 이런 정의는 어느정도 전통-역사성을 포함한다.
3. 언어규범
알다시피 언어규범이 제안하는 것과 실제 언중들의 언어는 절대 일치하지 않는다. 언어 안의 다양한 하위언어들부터 중구난방이니 당연하다. 그래서 어떤 언어양식의 규칙성을 지키겠다는 입장(규범주의)은 공격받기 쉽다.마치 증세를 시도할 때 벌어지는 조세저항 같은 것이다. 세금을 걷지 않으면 복지가 성립되지 않듯이, 일정한 언어규범이 없다면 언어의 체계성은 빠르게 붕괴하거나 변질된다. 결국 의사소통에 장애가 생긴다. 이는 국가기관이 주도하는 관치규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관치규범보다 개별 화자의 사회적 합의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조차, 언어규범만큼이나 추상적이다.
4. 하위언어
문화에 하위문화(sub-culture)가 있듯이, 언어에도 하위언어가 있다. 문화적 방언이라고도 한다. 언어적 기반은 공통이지만 표현 습관이나 주로 쓰는 어휘군 등, 발화 공간이나 환경에 따라 나뉘는 개인어의 집합이다.개별 화자의 사회적 합의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는 상식을 구실로 말하는 데 맞고 틀리는 게 어딨냐고 생각하는 것은, 1이나 ∞이나 0보다 크니까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규범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반규범교가 착각하는 것은 이렇다. 자신들의 문화적 방언이 독자적으로 성립하고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법률 또는 학술언어나 하위언어의 개성은 모두 추상적인 언어규범에서 조금씩 벗어남으로써, 상대적으로만 존재하고 유지될 수 있다. 언어규범이 가리키는 것은 어떤 강제성이 아니라, 그 원형으로부터 편재할 수 있는 다양성이다. 평면기하학에서 중심점이 있어야 둘레가 그려지는 원에 비유할 수 있겠다. 다시말해 모든 일탈적 표현양식은 이상적인 언어 체계(완벽한 규범언어)에 빚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번역투 따위는 말할 것도 없다.
5. 아름다운 우리말?
무조건 우리말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나도 회의적이다.물론 어미 활용과 조사의 덧붙음을 통해 동일한 어근과 어간에 대해 다양한 변주를 할 수 있음은 명백한 한국어의 특징이다. 그리고 그 특징이 독특하고 다채로운 표현형으로서 은유적으로 아름답다는 이야기라면,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양함 자체는 보편적 언어 수용자 측면에서 불편할 수 있다. 사투리가 아름답지만 표준말이 필요한 이유와 같다. 순우리말이 많이 쓰이면 좋겠지만 한자어가 강세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즉 아름답다면 그것을 살릴 수 있어야겠지만, 아름다움이 곧 언어의 활용가치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규범언어로부터 일상어와 문학어가 분리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같은 내용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 역시, 사실 외의 정서적 매개체로서 나름의 기능을 갖는다. 그러니 싸잡아서 이렇다 저렇다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6. 번역투가 뭐냐
간단히 말하면 번역된 표현으로서, 외국어의 규범언어 체계에 여전히 더 의존적인 표현양식을 가리킨다. 몇 가지만 거론해 본다.1) 낱말 수준에서 생소한 외국어를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은 일상어에 적절한 번역어가 없다면 차라리 그대로 쓰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기존 한자어를 조합해서 번역하는 것은 원어의 뜻을 정확하게 지시하기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음절의 경제성을 희생하고 어휘의 생산성(파생어 조합 가능성 따위)을 크게 약화시킨다. 적절하지 못한 한자어는 오히려 원래의 뜻을 왜곡하기도 한다.
직역투 번역어의 예 : broadband → 광대역. (* 문맥상 초고속인터넷이 아닌 광대역으로 번역해야 되는 경우가 있다.)대체로 반성되지 않는 낱말 수준의 번역투를 예로 들자면 지시어(지시대명사, 관사) 및 색채어를 비롯한 외래어 형용사(핑크, 짙은 풀빛을 "카키색"이라 잘못 표현하는 경우, 나이브, 심플, 다크) 남용이다.
음절 경제성 & 어휘생산성이 희생되는 번역어의 예 : broadband → 초고속인터넷
원래의 뜻을 왜곡하는 번역어의 예 : mobile broadband → 초고속 무선인터넷
2) 문장과 어구를 번역할 때 부자연스러운 어순을 방치하고 서술어구를 사전적 의미에 의존해서 해석하면 대체로 번역투라고 볼 만 하다. 학술서적에서 전형적인 번역투는 "-되어지다" 같은 피동 중복 표현인데, 솔직히 이건 번역투 문제라기보단, 한국말을 덜 배운 탓이다. 주술 호응이 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한편 어순이 비교적 자유롭다고 아무 품사나 쳐 넣으면 되는 게 아니다. 영어나 중국어처럼 어순이 엄격한 언어라도 문맥과 낱말의 의미로 품사를 유추할 수 있으면 이해는 된다. 뜻이 통한다고 회화체 또는 외국어를 해석된 순서 그대로 문장으로 옮기는 경우가 있는데, 의미가 전달되는 것과 문법적으로 옳은 표현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의" 남발 역시 번역투. 일본어와 달리 한국어는 띄어 쓰기를 하기 때문에 "~의"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의"를 많이 쓰는 다른 이유로는 서술부에 와야 하는 용언을 한자어로 만들어 쓰는 습관을 들 수 있고, 역시 번역투다. 행정문서에서 개조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서술부 용언을 명사형으로 쓰고 "~의"로 연결하는 예 : "복제의 방지" "지식의 범람" "정품사용의 확산"
7. 번역투는 필요한가
넓은 의미의 번역투는 앞서 제시된 표현양식을 포괄하는데, 필요에 따라 정착된 불가피한 양상도 적지 않음을 생각할 때 모조리 배척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고집이다. 좁은 의미의 번역투는 이러한 표현양식 중, 아직 공공연히 통일된 양식이 없으며, 개인이 노력하여 더 명료한 뜻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고칠 수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이 범주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달라질 게다. 이 역량이란 측정할 수도 없고 합의될 수도 없는 지점이기 때문에 각자 주관적인 판단에 기댈 수 밖에 없지만, 나는 어쨌든 "더 명료한 표현"이 존재할 경우 최대한 그렇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좁은 의미의 번역투는 지양해야 한다. 이는 일종의 Nerdview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좁은 의미의 번역투를 제외한, 공공연히 필요에 따라 정착된 번역투는 특정 문화집단의 하위언어로 간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표현이 어디서 비롯했을지 관심을 갖는 정도만으로도 언어의 명료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표현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언론과 출판분야에서 신경쓸 부분이다. 즉 잘못하면 까여야 하는 주체들이다.
8. 기능성
언어에 기능적 우열은 없다. 권장되어야 할 언어가 있고 도태되어야 할 언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전세계에서 영어가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는 영어가 선점한 언어네트워크상의 압도적인 지위 때문이지 영어가 기능적으로 뛰어난 언어이기때문이 전혀 아니다. 게다가 영어가 현재의 지위에 오르는 단초를 형성한 배후에는 정치적 경제적 바탕이 깔려 있다.9. 역량
사실 이대로 가면 - 현재도 그런 편이지만 - 한국어가 언어네트워크상 열등해 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언중들이 그 표현습관에 어떤 생각을 바탕으로 깔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뭐 대충 말해도 다 알아 쳐먹으니까 대충 쓰자?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외국어 표현이라면 그렇게 해도 된다. 개인의 의사소통 문제니까. 그런데 모국어를 대충 말해도 다 알아 쳐먹을 수 있는 인간은 같은 모국어 화자뿐이다. 언어규범을 의도적으로 무시할 때 드러나는 폐단은, 언어가 갖는 의사소통 도구로서의 역량을 갉아먹는 현상으로 나타난다.귀신같이 줄줄이 꿰진 못하더라도 지키려는 성의가 있어야 하는 이유는 이렇다. 규칙성을 무시할 때 얻는 이익은 사유화되나, 규칙성이 무시되어 발생하는 손실은 사회화하기 때문이다.
10. "우리말교" 글에 대해서
Clockoon님 말씀대로, 언중은 번역투를 알아먹기 힘들기 때문에 안 쓰자는 것에 공감한 것이다. 그러나 알아먹기 힘든 이유는 번역투가 "틀린 표현"이라서일 수도 있다. 번역투 역시 다른 방언이나 하위언어들과 같이 규칙성을 추출할 수 있으며, 그 규칙성은 다른 방언이나 하위언어들과 달리 한국어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 양상이 있어 번역투로 간주되는 것이다.한글의 유연성과 한국어의 유연성은 다른 것으로, 표기 체계의 음절 표현력이 곧 언어의 유연성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또한 11172자의 초중종성 조합이 모두 다른 음가를 갖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발음 가능한 조합은 일부이며, 또 한국어에서 많이 쓰이는 발음은 그 중에도 일부이다. 굳이 따지자면 한국어는 오히려 비중이 압도적인 한자어 덕분에 한글의 발음 규칙성이나 발음편의 현상을 제약당하고 있다.
한글은 풍부한 조합으로 외래어를 간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장점과 함께 음절 체계상의 제약으로 통일되지 않은 외래어 표기가 난립하기 쉬운 단점도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라도 반규범교는 좋지 못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앞서 지적한 반규범교에 대응하는 태도를 "우리말교"로 상정할 때 보다 적절한 표현을 제안하자면 "규범진리교"나 "과규범주의"정도가 적당하다. 단순히 "우리말교"라고 명명하는 시도는 "우리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잠재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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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밸리로 보냄.
요약 및 보충
1. 규범언어란, 언중의 포괄적 언어체계로서, 표준어를 포함하여 방언, 전문어, 학술어, 일상어 등 하위언어들의 규칙성이 집약된 추상체계이다.
2. 번역투란, 규범언어에 의존적인 개념으로서, 외국의 규범언어에 더 의존적인 표현양식이다.
3. 반규범교란, 번역투는 의미상 번역투가 아님을 또는 정의상 번역투로 분류될 필요가 없음을 주장하며 번역투 배격에 회의적인 태도를 가리킨다. 연역적으로 규범언어를 부정하게 된다.
4. 우리말교란, 이 글에서 지시한 넓은 의미의 번역투를 모두 배격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연역적으로 규범언어를 실체화하려는 노력에 연결된다. 나는 이를 규범진리교나 과규범주의 정도로 바꿔 부를 것을 제안한다.
5. 한글은 음절 표현력이 뛰어난 문자지만, 실제 한국어의 음절이 그만큼 다양하지는 않다. 한글 체계 자체의 제약으로 발생하는 외래어 표기상의 난항이 적잖음을 무시할 수 없다.
6. 나는 좁은 의미의 번역투를 지양하는 태도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려고 노력한다. 규범주의적 언어관은 언중의 필요에 따라서 요청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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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감사합니다.






덧글
'하얀고깔 적삼 모두모아 고이접어 나빌레라.'를 어감 살려 영역할땐 어떻게 해야하나? 라고 하던 글이 생각남.
I've gathered every white peaked hats and unlined summer jackets of all and fold them tenderly, then they looked like a butterfly.
정도 될 것 같음.... 십라 이게 무슨소리야! 보다시피 어감따위 전혀 살아나지 않음.
저의 번역의 핵심은 한국어 사용자가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라는 원칙이지만, 표준어 원칙에도 충실하고자 하는데 가끔 모순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제가 감히 실전적으로 님의 말을 해석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최대한 표준어를 따르지만, 원뜻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최대한 한국어 화자가 쉽게 이해하는 문장으로..." 이렇게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덧붙이면 현행 표준어가 존중되어야 할 이유는, 그것이 궁극적인 언어규범이라서가 아니라 궁극적인 언어규범 중 (비록 위임에 의한 것이지만) 사회적 합의에 따라 보수적으로 관리-유지된 유일한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표준어보다 더 공공연한 지위를 확보한 표현방식은 언젠가 사전에 오르고 관용적으로 인정되는 등 사후 보정되죠.
과연 이 아래에 어떤 덧글들이 달릴지..
이오공감 진입을 축하드립니다.
우와 이런 엄청난 주장을 쉽게 기정사실화 할수 있나요?
이외에 부분은 표준성이 가져다 주는 이득이 별로 없네요.
법률용어가 일상언어와 차이가 커서 오해가 생긴다는 말씀에는 반정도 동의합니다. 법률용어를 이해할 때 오해를 빚는 결정적인 이유는, 용어 자체의 생경함 때문이 아니라 일상어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어휘 간의 관계를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즉 표현의 표준성이 부족해서 법률용어를 오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률용어만의 표준이 있기 때문에 오해되는 것이죠. 일상어가 법률용어만큼의 표준성을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전문용어도 대체로 비슷하죠.
-_-님이 생각하는 표준성이란 아마도 법률적인 책임이 수반되는 분야에서의 엄밀성을 전제하는 것 같네요. 그 외의 분야에서는 자유로운(무규칙한) 표현양식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지적하신 부분은 이미 규범언어의 일부인 하위언어로써 전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일정한 언어규범이 없을 때 언어의 체계성이 붕괴, 변질되는 예는 흔합니다. IT분야 마케팅용어 등 신규 외국어를 음역할 때 외래어 표기법이 무시되는 경우를 들 수 있고, 일본어에서 많이 차용된 오덕용어 등 서브컬쳐 분야에 한정된 표현이 비교적 협소한 사용범위에 비해 통일성이 떨어지는 까닭도 "서브컬쳐 용어는 이것이 정론이다"하는 입장이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별로 "엄청난 주장"은 아닌데요 :)
...근데 좀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런 글에서조차, 번역투 문장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는 게 참 아이러니합니다..(..)
라는, 본문에서도 언급된 허황된 정의를 부르짖는 분들은 한번 보면 좋겟네요.
잘 읽고 가요
ps. 번역을 변명한다면, 번역가들은 뜻을 최대한 바꾸지 않고 전달하면 될 뿐이지 문법,어법등을 정확하게 따라야 될 필요는 없다고 배웠어요! 다른 사람 하는 만큼만 하면 됨니다. 그러니까 '번역체'라는, 마치 저것들이 잘못된 이유가 번역에 있다고 하는듯한 단어는 참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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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번역을 업으로 한 경험이 없으니, 실무적인 차원의 지침을 아우르는 데는 한계가 있겠지요. "번역체"가 부적절한 명명일 수 있다는 지적에 동의합니다. "유사 피진어"라고 부를까요? :)
...뭐 저는 '대중이 이해하고 사용한다면 맞는 언어'라고 생각하니까 '번역체'라고 하는 게 맞겠죠. 이미 '저런 글' 은 '번역체'라고 불리니까요... 맘에 안들 뿐 'ㅅ'
ps2. NAATI conference level 따보겠다고 시험 신청을 하니까 날아온 책 첫마디 '니가 영어로 통역을 하고 싶으면 한글 문법,어법,단어,발음부터 아나운서 이상으로 익히고 하세요. 그것도 못하면 때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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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통/번역도 레벨이 높아지면 문법 어법도 정확해야 한다는 거겠죠? 세상 어디나 그렇듯이 잘난 사람들은 허들도 높은법인가...
저도 A언어를 B언어로 전문적으로 통/번역하려 한다면 최소한 B언어의 언중들보다는 B언어에 더 나은 자질을 보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conference level이 국제 통역관 수준이네요. 그런 수준이면 아주 강경한 요구는 아닌 듯합니다.
물론 제 번역자로서의 자질은... 언급할 가치도 없지만요 ㅇ<-ㄷ
일제 들어가기 전 부터 일본쪽 서양번역서나 일본쪽 자료들을 번역하는 중에 한자어같은 경우 그냥 막 들어온게 많긴합니다. 그리고 신소설같은 경우 더 극심합니다;; 彼라던지 말이죠;
원글은 제가 좀 과격하게 쓴 감이 있습니다. '우리말교'라는 말도 좀 자극적인 용어고..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건 '규범진리주의'가 아니었거든요. 제가 핑백이나 트랙백한 글들을 보면 규범에 대해서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굳이 정의하자면 '애국주의' '순혈주의'라고 해야 할까요. 예를 들어 '야채-채소' 논쟁에서 등장하는 맞춤법이니 규범이니 하는 것은 이 글에서 말하는 개념과 전혀 다른 것일 겁니다.
최소한 문형적인 부분에서는 님이 쓰신 것에 동의합니다. 다만 용어나 외래어 사용에 있어서는 여전히 규범이 불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부분에까지 '사회적 합의'에 맡기지 않는다면 너무 빡빡하지 않을까요:)
글에서 규범을 어떤 규칙적인 양식을 고수하는 태도라고 정의했는데, 좀 더 설명이 필요하겠네요. 주로 제 글에서는 '표현'형태를 지칭하기 위해 양식이라는 말을 썼지만, 결국은 양식 자체가 규범이 아니라 그 양식을 대하는 가치관, 태도라는 것에 무게를 두고 보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굳이 스스로 규범이라고 언급하거나 지칭하는 시도를 하지 않더라도, 말씀하신 "애국주의"나 "순혈주의"언어관을 분류하자면 "국수주의적 규범주의" 유형으로 볼 수 있겠지요.
예를 드신 야채-채소 논쟁은 사소한 듯 하면서도 중요한 면이 있습니다. 현대국어에서 병존하는 유의어 중 무엇을 기준으로 대표어로써 취급할 것인가, 하는 점이죠.
"야채"가 일제 잔재의 혐의를 품고 있으면서 "채소"에 비해 대표성이 높다보니 국수주의적 규범을 주장하게 되었을텐데, 이 때 기준으로 취한 것은 낱말의 역사적 정통성이라고나 할까요.
만일 이 때 "채소"의 규범적 우위를 단순 부정한다면 국수주의적 규범주의 입장에서는 나머지 (일제 잔재의 혐의를 갖는 낱말들에 밀려난) 우리말 역시 부정되고, 일제로부터 해방된 대한민국의 역사와 침략 전의 자주민족국가로서의 정통성도 부정되는 것처럼 인식하게 되죠.
사실 국수주의적 규범주의는 우선순위에 두는 낱말이나 표현의 정통-역사성을 전제하고 있는데 이건 완전히 입증하기 어려운 지점이고, 이때문에 설득력이 약화되곤 하죠. "야채나 채소나 한자어이긴 마찬가지인데 왜"라고 따지면 또 양상이 복잡해지고요.
먹거리로 쓰는 풀을 가리켜 "푸성귀"라고 하는 최상위 범주가 있고, "소채"는 밭에서 나는 푸성귀(순우리말 "남새"), "야채"는 들이나 산에서 나는 푸성귀(순우리말 "푸새")라는 정의가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십몇년전) 봤던 만화책에도 나오던 표현이죠.
채소는 소채를 순서만 바꾸어 쓴 한자어인데, 아무튼 어디서 나는지와 무관하게 이제 야채나 채소가 푸성귀를 대신하게 되었네요. 개념적으로 산지가 중요했던 과거와 달리 푸성귀를 직접 가꾸거나 캐 먹는 경험이 없는 현대인들에게는 남새든 푸새든 아무래도 좋게 된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사회적 합의"란 이런 수준이죠. 그리고 전 야채나 채소를 필요없는 말로 배격하고 싶지 않지만, "푸성귀"란 낱말도 여전히 쓰이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이 좀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얼마간의 노력"이야말로 사회적 합의를 "(이상적) 언어 규범"에 가깝게 하려는 시도죠. 그리 빡빡하게 생각지 말아 주시길 :)
그런데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보충부분에서
'한글은 음절 표현력이 뛰어난 문자지만, 실제 한국어의 음절이 그만큼 다양하지는 않다. 한글 체계 자체의 제약으로 발생하는 외래어 표기상의 난항이 적잖음을 무시할 수 없다.'
라고 하셨는데 이는 '한글은 표현력의 폭이 넓지만 결국 한글 표현력에 제한이 있어서 난감하다'라는 말이 되는 것 같은데 이부분이 이해가 안돼서요.
폭이 넓지만 제한이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_~;
태클거는게 아니라 제가 이해가 안돼서 그렇습니다. 이해를. ^^;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래요. "음절 표현력"은 한글 모아쓰기로 나타나는 낱글자 조합이 무려 11172자나 됨을 얘기한 거죠. "11172가지의 서로 변별되는 소리를 나타낼 수 있다"는 얘기와 전혀 다른 겁니다. 구별 안 되는 소리들이 제법 있는데 어쨌든 눈으로 구분되는 낱글자 종류가 만 천 백 일흔 두 개나 있으니 어딘가 쓸 데가 있지않겠냐 뭐 이런 겁니다.
한편 "한글 체계 자체의 제약"도 역시 "한글 표현력에 있는 제한"과는 다릅니다. 외래어 표기를 위한 도구로서는 못마땅한 점들이 있죠. 일본어 소리를 적을 때 불리한 점은 이 글(http://imc84.egloos.com/3342812)에서 대강 지적했으니 참조하시길.
영어 소리를 적을 때도 비슷한 이유들(유성음-무성음 식별 등)이 있긴 한데 이건 언어특성이라 보아 넘길 수 있는 문제고, 모아쓰기로 인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strong strike spring 따위처럼 단음절 어휘를 절대로 단음절로 쓸 수 없다든지. (모아쓰기에서는 음절마다 반드시 하나 이상의 모음을 넣어야 하니까요.)
한 줄 요약 : 한글 표현력 ≠ 음절 표현력 ≠ 외래어 표현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