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언어 또는 학술 밸리 신설을 위한 열 여섯 번째 투쟁입니다. 관련 포스팅을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산업사회의 전,후방연관효과에 이어서.
윗글에서 언급했던
뭔소리냐면, 산업체제에서 연관효과란 관찰된 사실로부터 의도적으로 추상화시킨 속성들을 갖고 증명해야 하지만, 언어체계는 이미 추상화한 상태이기 때문에 연관효과가 직접 드러난다는 것이지요.
연관효과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언어 체계 자체보다는 조어력이라는 가상의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말을 만드는 방법은
1) 기존하지 않던 새로운 음가를 부여하는 것, 외래어를 음역하는 것,(음차)
2) 새말과 의미가 닮았거나 관련있는 기존 낱말의 음가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의미 확장)
3) 의미에 따라서 접사와 어근의 새로운 조합을 만드는 것,(파생)
4) 의미에 따라서 본뜻이 상이한 어근을 조합하는 것,(합성)
따위가 있지요.
1)에서 새로운 음가란 이를테면 근본이 없는 낱말을 만든다는 건데요. 초기 의성어나 의태어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그리고 외래어를 음역하는 것, 엄밀히 말하면 이건 새말을 만드는 것이 아니지않느냐 할 수 있는데, 음역된 낱말도 한정된 언어 체계 안에 없는 것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므로 새말의 범주에 넣는 것이지요.
특히 단순히 외래 개념을 수용하는 것(예를 들면 "버스", "택시") 뿐이 아니라, 어원이 되는 외국어의 의미와 상관 없이, 소리값만 비슷하게 되고 의미범주나 지시대상은 바뀌는 경우(예를 들면 "아파트", "룸 살롱") 역시 새말을 만든 것으로 취급할 수 있지요.
사실 2)에서 예시할 수 있는 낱말들 가운데는 1)로도 설명할 수 있는 외래어가 포함됩니다. 다만 한국어를 예로 들면 없던 음가를 나타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립하는 것이지요. 엄밀히 말하면 이는 새말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의미론에서 낱말의 의미를 정의할 때 의미란 그 낱말의 용법(use, 쓰이는 환경, 규칙)이다, 이런 주장이 있다는 정도만 얘기해 두지요.(이 주장은 비트겐슈타인에 의해 확립된 ... 에이 쥐뿔도 모르니까 관두죠)
이 주장을 전제해서 저는 낱말의 의미가 확장된 것은 낱말의 용법이 늘어난 것이고 이는 새로운 낱말이 만들어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다만 음가가 중복된 것이다), 이렇게 볼 수도 있겠거니 하는 겁니다.
3)과 4)는 통사론에서 말하는 두 가지 조어법이지요. 고등학교때도 정의를 배웠던 거 같으니까 생략... 좀 허술하긴 하지만 이렇게 새 말을 만드는 네 가지 방법이 있다고 치죠. 이걸로 특정 언어의 조어력이라는 가상의 지수를 측정할 수 있다고 보자고요.
그럼 우선 간단히 생각해 볼 때, 1)의 방법으로는 일본어처럼 표현 가능한 음절 수가 상대적으로 제한된 언어는 특히 새로운 음가를 부여하기 매우 어렵죠. 새롭게 부여할라그래도, 웬만한 음가에는 다 의미가 이미 연결되어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2) 처럼 (의도한 게 아닌데) 결과적으로 동음이의어가 많아질 수 있지요.
즉 어떤 언어의 조어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조건으로 표현 가능한 음절 수가 많아야 된다는 것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어떤 의미가 이미 특정 음절을 선점한 정도가 낮아야 된다고 볼 수도 있겠죠.
한편 합성이나 파생에 필요한 기존 형태소들이 수적으로 많이 발달해 있을수록, 합성어나 파생어를 만들기 좋을 것이므로 이것은 많을 수록 좋겠네요. 이런 네 가지 조건과 조어력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지요.
어떤 언어가 우월하고 열등하다는 식의 주장은 언어학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예시한 조어력이나 다른 특성들처럼 상대적으로 이를 쓰고 말하는 화자들에게 기능적으로 좋거나 나쁘게 작용하는 요소들은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언어가 발전한다는 것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일방적으로 단순해서 좋거나, 복잡해서 나쁘다는 식의 분석은 불가능합니다. 어떤 언어든지 개별 요소에 기능적 양면성이 있고, 그 정도가 상이할 뿐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한 언어체계 안에서는, 모든 요소들이 기능적으로 상호 보완적(제로섬 게임처럼)이기 때문에 결국 언어의 발전이란 허구이다, 이런 주장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얘기가 없군요. 뭐 그럴 수도 있겠죠. 만일 모든 요소들이 기능적으로 완전히 상호 보완적이라면 문법, 맞춤법, 철자법도 필요 없고 모든 화자들이 포스트모던스런 언어를 구사한대도 제지할 필요는 없겠죠. 물론 저는 사실이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요.
한편 이러한 고찰을 통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단순히 여기서는 조어력 하나만 갖고 예를 들었습니다만, 언어 체제 전체를 놓고 볼 때 전부 연관효과가 있다는 거지요. 위에 예시한 조어력만 해도 말이죠.
우선 이런 것들이 조어력으로 향하는 개별 조건들의 후방연관효과입니다.
여기서 조어력에 발달에 의한 전방연관효과는 이런 것들이 있겠지요.
이것은 얼핏 순환논증의 오류처럼 보이지만, 언어란 실제로 이런 재귀적인 연관성을 갖는다는 건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지요. 조어력 말고도 문법의 규칙성, 관용어구의 활용도, 이런 것들을 비슷하게 분석할 수 있을 것이지만 이 글에서 이미 너무 많은 가설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ㄱ-; 그만 두겠습니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
이 글의 가설을 바탕으로 다음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 체계 안에서 한자어, 한자로 된 접사를 활용해 새말을 만드는 경향이 대단히 일반적이지요? 이 경향이 누적될수록 고유어에 의한 새말은 생산성(조어력)을 잃게 됩니다. 기존 어휘 자체가 새말의 재료를 발달시키는 전방효과를 갖고 있으니까요.
1) 한자어는 표현 가능한 음절 수가 매우 제한되어 있고
2) 더 나쁜 것은 이미 의미를 선점당한 많은 음절군이 있는데다가
3) 한자어 자체의 문제점으로서, 의미를 지나치게 구체화, 용법을 제약하는 경향이 있음.
동음이의어 중복 문제를 완화하고 음절 제약을 극복하려면 애초에 한자어 조어력에 너무 의존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안타깝죠. 기왕에 벌어진 일 어쩔 수 없으니 장차 고유어 조어력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겠지요.
언어 밸리가 없으니 세계 밸리로... ㅇ<-ㄷ 학술/언어밸리 제발 좀.
산업사회의 전,후방연관효과에 이어서.
윗글에서 언급했던
연관효과개념을 언어 체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현실의 산업간 기술체제간 관계보다 더 유연하고 긴밀하게 연관성을 갖는다는 주장이, 언어의 본질적인 추상성으로 뒷받침되죠.
뭔소리냐면, 산업체제에서 연관효과란 관찰된 사실로부터 의도적으로 추상화시킨 속성들을 갖고 증명해야 하지만, 언어체계는 이미 추상화한 상태이기 때문에 연관효과가 직접 드러난다는 것이지요.
연관효과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언어 체계 자체보다는 조어력이라는 가상의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말을 만드는 방법은
1) 기존하지 않던 새로운 음가를 부여하는 것, 외래어를 음역하는 것,(음차)
2) 새말과 의미가 닮았거나 관련있는 기존 낱말의 음가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의미 확장)
3) 의미에 따라서 접사와 어근의 새로운 조합을 만드는 것,(파생)
4) 의미에 따라서 본뜻이 상이한 어근을 조합하는 것,(합성)
따위가 있지요.
1)에서 새로운 음가란 이를테면 근본이 없는 낱말을 만든다는 건데요. 초기 의성어나 의태어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그리고 외래어를 음역하는 것, 엄밀히 말하면 이건 새말을 만드는 것이 아니지않느냐 할 수 있는데, 음역된 낱말도 한정된 언어 체계 안에 없는 것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므로 새말의 범주에 넣는 것이지요.
특히 단순히 외래 개념을 수용하는 것(예를 들면 "버스", "택시") 뿐이 아니라, 어원이 되는 외국어의 의미와 상관 없이, 소리값만 비슷하게 되고 의미범주나 지시대상은 바뀌는 경우(예를 들면 "아파트", "룸 살롱") 역시 새말을 만든 것으로 취급할 수 있지요.
사실 2)에서 예시할 수 있는 낱말들 가운데는 1)로도 설명할 수 있는 외래어가 포함됩니다. 다만 한국어를 예로 들면 없던 음가를 나타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립하는 것이지요. 엄밀히 말하면 이는 새말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의미론에서 낱말의 의미를 정의할 때 의미란 그 낱말의 용법(use, 쓰이는 환경, 규칙)이다, 이런 주장이 있다는 정도만 얘기해 두지요.(이 주장은 비트겐슈타인에 의해 확립된 ... 에이 쥐뿔도 모르니까 관두죠)
이 주장을 전제해서 저는 낱말의 의미가 확장된 것은 낱말의 용법이 늘어난 것이고 이는 새로운 낱말이 만들어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다만 음가가 중복된 것이다), 이렇게 볼 수도 있겠거니 하는 겁니다.
3)과 4)는 통사론에서 말하는 두 가지 조어법이지요. 고등학교때도 정의를 배웠던 거 같으니까 생략... 좀 허술하긴 하지만 이렇게 새 말을 만드는 네 가지 방법이 있다고 치죠. 이걸로 특정 언어의 조어력이라는 가상의 지수를 측정할 수 있다고 보자고요.
그럼 우선 간단히 생각해 볼 때, 1)의 방법으로는 일본어처럼 표현 가능한 음절 수가 상대적으로 제한된 언어는 특히 새로운 음가를 부여하기 매우 어렵죠. 새롭게 부여할라그래도, 웬만한 음가에는 다 의미가 이미 연결되어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2) 처럼 (의도한 게 아닌데) 결과적으로 동음이의어가 많아질 수 있지요.
즉 어떤 언어의 조어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조건으로 표현 가능한 음절 수가 많아야 된다는 것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어떤 의미가 이미 특정 음절을 선점한 정도가 낮아야 된다고 볼 수도 있겠죠.
한편 합성이나 파생에 필요한 기존 형태소들이 수적으로 많이 발달해 있을수록, 합성어나 파생어를 만들기 좋을 것이므로 이것은 많을 수록 좋겠네요. 이런 네 가지 조건과 조어력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지요.
조어력은 표현 가능한 음절, 합성 가능한 형태소, 접사에 비례하고 특정 음절 조합이 기존 낱말에 선점된 정도에 반비례한다.네 그럴싸하지만 이런 엉터리 이론을 정당화하려면 책 몇 권을 써도 모자랄 거 같군요. 그럴 능력이 없으니 관두죠.
어떤 언어가 우월하고 열등하다는 식의 주장은 언어학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예시한 조어력이나 다른 특성들처럼 상대적으로 이를 쓰고 말하는 화자들에게 기능적으로 좋거나 나쁘게 작용하는 요소들은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언어가 발전한다는 것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언어의 발전이란 역사적, 경험적인 변화의 누적과 통합을 겪으면서 화자들에게 기능적으로 유리한 요소는 보편화하고, 불리한 요소는 정리되거나 소멸하는 경향이다.
물론 일방적으로 단순해서 좋거나, 복잡해서 나쁘다는 식의 분석은 불가능합니다. 어떤 언어든지 개별 요소에 기능적 양면성이 있고, 그 정도가 상이할 뿐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한 언어체계 안에서는, 모든 요소들이 기능적으로 상호 보완적(제로섬 게임처럼)이기 때문에 결국 언어의 발전이란 허구이다, 이런 주장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얘기가 없군요. 뭐 그럴 수도 있겠죠. 만일 모든 요소들이 기능적으로 완전히 상호 보완적이라면 문법, 맞춤법, 철자법도 필요 없고 모든 화자들이 포스트모던스런 언어를 구사한대도 제지할 필요는 없겠죠. 물론 저는 사실이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요.
한편 이러한 고찰을 통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단순히 여기서는 조어력 하나만 갖고 예를 들었습니다만, 언어 체제 전체를 놓고 볼 때 전부 연관효과가 있다는 거지요. 위에 예시한 조어력만 해도 말이죠.
우선 이런 것들이 조어력으로 향하는 개별 조건들의 후방연관효과입니다.
1) 표현 가능한 음소 수 → 표현 가능한 음절 수 → 표현 가능한 음절 조합 → 조어력
2) 의미에 선점되지 않은 음절군 수 → 조어력
3) 표현 가능한 음절 수 → 파생에 쓰일 형태소(접사) 수 → 조어력
4) 추상화한 어휘 수 → 합성에 쓰일 형태소(어휘) 수 → 조어력
여기서 조어력에 발달에 의한 전방연관효과는 이런 것들이 있겠지요.
1) 조어력 → 어휘 → 추상화한 어휘 수 → 합성에 쓰일 형태소(어휘) 수
2) 조어력 → 어휘 → 추상화한 어휘 수 → 파생에 쓰일 형태소(접사) 수
이것은 얼핏 순환논증의 오류처럼 보이지만, 언어란 실제로 이런 재귀적인 연관성을 갖는다는 건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지요. 조어력 말고도 문법의 규칙성, 관용어구의 활용도, 이런 것들을 비슷하게 분석할 수 있을 것이지만 이 글에서 이미 너무 많은 가설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ㄱ-; 그만 두겠습니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
이 글의 가설을 바탕으로 다음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 체계 안에서 한자어, 한자로 된 접사를 활용해 새말을 만드는 경향이 대단히 일반적이지요? 이 경향이 누적될수록 고유어에 의한 새말은 생산성(조어력)을 잃게 됩니다. 기존 어휘 자체가 새말의 재료를 발달시키는 전방효과를 갖고 있으니까요.
그래, 맞다 치고 한자어 때문에 고유어 조어력이 쇠퇴하면 그게 뭐 어떻다는 건데?라고 반문할 사람이 있겠죠? 보편적인 두 가지 문제와, 한국에서 쓰는 한자어에 한정된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1) 한자어는 표현 가능한 음절 수가 매우 제한되어 있고
2) 더 나쁜 것은 이미 의미를 선점당한 많은 음절군이 있는데다가
3) 한자어 자체의 문제점으로서, 의미를 지나치게 구체화, 용법을 제약하는 경향이 있음.
동음이의어 중복 문제를 완화하고 음절 제약을 극복하려면 애초에 한자어 조어력에 너무 의존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안타깝죠. 기왕에 벌어진 일 어쩔 수 없으니 장차 고유어 조어력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겠지요.
언어 밸리가 없으니 세계 밸리로... ㅇ<-ㄷ 학술/언어밸리 제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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