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는 건가.

통신체는 왜 까여야 했을까? - 넷의 계급화에 대해에 트랙백 보냅니다.

까는거 같아서 죄송합니다.

글쓰신분 말씀대로 "넷이 '공동체' 규모에서 '거대한 사회'로 확장되었다" 흐름에는 대체로 동의해요. 가상공간의 디지털 인격체가 계급환경에 처하게 됐다는 주장도 대체로 수긍합니다.

기본전제
통신체에 관한 학술적 연구는 적어도 2000년대에 국가기관의 주도로 큰 틀을 잡아가기 위한 용도로 이미 시작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문화관광부에서 2000년도에 발행한 보고서같은거죠.

한편 (늦게 쳐도) 2002년대부터 개별 연구자들에 의해 산발적인 연구가 이뤄지기시작했으며 제가 파악한 연구의 갈래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1. 국어교육학적 관점 : 통신공간의 "유해언어"연구 - 사용실태와 대책
2. 사회학적 관점 : 사이버공간의 "범죄"연구 - 언어폭력 실태와 대책
3. 언론학적 관점 : 쌍방향미디어의 "통신체"문화 연구 - 사용유형과 영향

이 세 가지 관점은 꼭 자로 잰 것처럼 명백히 분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에, 대체로 복합적인 시각 내지 미분화된 관점으로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런 유형의 연구논문들은 4년제 대학 도서관에서 학사, 석사 졸업논문을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 글머리 기호(알파벳 소문자)는 제 편의를 위해 임의로 부여하였습니다.
이의1
(a) 누구도 '통신체'에 대중의 합의를 거친 정의를 내리지 않았었다.
(b) 누구도 통신체를 쓰는 계층이 진짜 '찌질이'인지 계측하지 않았었다.
(c) 누구도 통신체가 국어에 어떤 변형과 해악을 가져오는 지 연구하지 않았었다.
(d) 누구도 통신체가 사람이 찌질대게 만드는 지 연구하지 않았었다.
(e) 누구도 '찌질댐'이 어떤 상태인지 규정짓지 않았었다.
(f) 누구도 통신체를 규제한다는 게 '찌질댐'을 예방하는지 연구하지 않았었다.
(g) 설령 연구가 되었더라해도, 누구도 논하지 않았고 그 성과를 알리지 않았었다.

h 우리는 아직 통신체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었다.

주장(a~h)하신 것들은 아무래도 글쓰신 분의 입장은 "이렇게 하지 않았으나 해야 마땅하다"고 말씀하는 것으로 보이니까 그렇게 간주하겠습니다.

주장(a)
연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마땅히 연구자의 주관적 시선과 가치관이 반영되는 "정의"를 갖게 됩니다. 물론 이 과정에는 기존의 학문적 성과들(선행 연구와 정립된 이론)이 바탕이 되겠지요.
"통신체"라는 대상에 대해서는 상황적 맥락에 따른 암묵적 동의나 수긍은 있을 수 있어도 단일한 "정의"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저 일시적인 합의가 있을 뿐이지요. 이건 제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말씀(a)하신 "대중의 합의를 거친 정의"는 무척 무리한 요구이십니다.

주장(b)
연구의 대상이 "통신체"냐, "쓰는 사람"이냐에 대한 문제는 연구의 주제를 어떤 틀로 잡느냐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위에 말한 "연구의 갈래"말이죠.
글쓰신 분도 일단 "찌질이"에 대한 '대중의 합의를 거친 정의'를 가져오셔야 얘기가 될 것 같아요.

주장(c)
국어에 "어떤 변형"을 가져오는 지는 국어사용 실태조사만 하면 알 수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보고서를 내놓는 것으로 아는데요.
국어에 "어떤 해악"을 가져오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변형'은 기계적으로 달라진 꼴을 알아내기만 하면 되지만, '해악'은 바뀌기 전과 후를 비교해 어느 쪽이 좋았는지 가치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설득적 근거를 확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타당성 이전에 해악에 대한 연구는 존재합니다. 이건 사실이지요.
어쨌든 말씀하신 "변형과 해악"은 지금껏 연구되어 왔으므로 주장(c)은 사실과 다릅니다.

주장(d)
"통신체가 사람을 찌질대게 만든다"는 명제를 굳이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단지 가상공간에서의 행동양식을 문제삼는다면, 통신체는 최근까지도 가상공간에서의 인격체를 판단할 유일한 근거가 되지 않습니까?
즉 "행위=인격"입니다. 그러므로 "찌질한 행위"는 "찌질한 인격"으로 귀결. 주장(d)는 생산성이 없는 의제 같습니다.
단순상관관계가 아닌 인과관계로 표현한다면, "찌질대는 사람은 가상공간에서 통신체를 사용할 개연성이 높다"거나 또는 "찌질대는 사람은 현실에서도 가상공간과 같은 통신체를 사용할 개연성이 높다"는 가설은 가능성이 있네요. 일단 "찌질한 행위"의 학문적 정의가 선행해야 되겠지만.

주장(e)
제가 묻고싶은걸 써주셨네요. 주장하신 분도 찌질댐이 뭔지 모르거나 정의할수 없는 대상이라 간주하신 것으로 보겠습니다. 아니면 "찌질댐"에 대해서 어떤 정의를 내리고 계신지 궁금하군요.
사실 개별 연구자들은 "찌질댐"이나 "찌질함"이라는 표현을 정의해서 연구에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광범위하니까요. 하지만 통신체가 다양한 찌질댐의 한 양식에 속한다고 전제할 수는 있겠지요.

주장(f)
주장(d)의 반박과 비슷한 얘기 같습니다만 다른 맥락에서... 통신체 사용이 곧 찌질댐은 아니지만, 찌질댐의 여러 갈래 중 하나로 통신체를 언급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전제를 취한다면 통신체를 제한함으로써 찌질댐의 실현을 부분적으로 방해하거나 약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의 연구는 이미 진행되어 왔습니다. 주장(f)는 사실과 다릅니다.

주장(g)
헐...이란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방패막이 치신 건가요? 논하는 것 자체는 이미 글쓰신 분이 지적하셨듯이 상호논쟁이 지리멸렬하게 전개됐죠. 연구 자체는 소외된 감이 있습니다만 그 결과는 학회에 발표되고 언론에 보도되는걸로 충분히 할 일을 다한 것으로 봅니다. 저같이 후줄근한 검색 몇번으로도 이렇게 찾을 수 있는데 모르셨으면, 주장의 공격성에 비해 지나친 관심부족 아닌가 싶어요.

그러므로 글쓰신분의 주장(h)은 사실과 다릅니다.

"우리"가 아니라 글쓰신분을 비롯한 통신체 옹호주장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통신체 사용의 정당함에 대하여 얼마나 어떻게 증명해왔습니까?
(사실 위에 정리한 접근경로들을 통해서, 통신체 옹호의 입장을 취하는 연구도 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입장에서 통신체를 '넋놓고 까댈 만하다'고 주장하는 결론은 보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면적으로 방임해야 한다'는 주장도 없습니다. 모두 '절충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맺음하고 있죠.)

전 현시대의 통신체 사용행위를 개인의 흡연행위와 동급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부 개인은 강력한 법적 규제를 희망할 수도 있지만 사회적 합의를 이룰만한 공감대나 반감은 형성되지 않는 대상이죠. 동시에 무제한 일반화할 경우 전사회적 손실이 명백하여 자유방임할 수도 없는 대상이기도 하니까요.


이의 2
통신체 논쟁은 사실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지속된 논쟁이었으며(i), 사실상 어떠한 제대로된 학술상 토의나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j). 그들은 논쟁 속에서 수많은 주장을 했지만 양측간에는 어떤 합의도 도출되지 않았고 상대를 이해하지도 않았다(k).
무엇보다도 규제자들은 규제의 대상이 된 '찌질이'로부터 어떠한 합의도 얻어내지 못 했다(l).

어떠한 제대로 된 학술상의 토의나 연구도 안 찾아보셨으면서 덮어두고 없다고 주장(j) 하시는데, 가시적인 논쟁은 그렇게 짧게 이루어졌나 보군요. 그냥 주장(i)을 믿겠습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1년도 안되는 기간인지 말씀 안해주실 것 같지만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주장(l)에서 구체적으로 규제자들이 "규제담론을 형성하고 연구실적을 정책에 반영하는 이들"인지, 단순히 "규제를 주장"하는 이들인지 언급하지 않으시는데 그냥 후자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전자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시는 것 같으니까요.
그럼 논리적으로 되짚어 보겠습니다. 어떤 '규제'의 테두리를 "규제 대상"과 논의해서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 것인가요?

차량 통행과 신호등을 예로 들겠습니다. 항상 차량이 북적대고 복잡한 도로에서 모든 차량은 신호등을 준수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기존의 합의된 약속을 누군가 돌발적으로 깨고 정지신호에 튀어나와서, 사고위험을 야기할 때, 혹은 사고를 냈을 때. 규제의 테두리는 도로교통법이고 규제 대상은 신호위반자가 되겠네요. 많이 양보해서, 도로교통법을 현장의 운전자들만이 합의해서 조율 가능하다고 치겠습니다. 그럼 신호위반자는 현장의 신호준수자들과 합의해서 자기 벌칙을 흥정할 수 있는 것입니까?

원론적으로 불가능한 주장(l)을 하고 계신것은 아닌지요.



이의 3
공산주의자들이 '일단은' 프롤레타리아들에게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혁명을 일으켰듯이 무개념자들에게 개념을 주는 것이, 통신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바른 언어생활로 이끄는 것이 통신체 논쟁의 진짜목적이 아니었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 했다.
(m)
통신체를 사용하는 집단, 찌질이들은 디씨로 유배되었다.
초딩체를 사용하는 집단, 초딩은 게임사이트로 추방되었다.
오덕체를 사용하는 집단, 오덕들은 사람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가식월드에 사는 야만인들, 된장들은 애초에 사람도 아니었다.

이들은 '정상인'들에 의해 비정상이 되었다.
대체 왜 그랬을까?
이 집단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이들 대부분이 특정한 연령, 계층으로 이루어진 집단이었다는 점이다. '찌질이'들은 당시 중,고등학생 남자들이 주를 이루었다. '초딩'은 저연령대 아이들이, '오덕'은 일본 문화를 향유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계층이었다.
(n)
이들은 넷의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자신들만의 연대, 계층을 형성해나간 사람들이었다. 이런 소수자 집단들이 중심적으로 까였던 것은 과연 우연일까?

이거 단순한 사실관계를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이려고 하셨지만 굉장한 선험적 명제(m)가 아닙니까? 이어서 나온 단락의 주장(n)을 보면 무슨말씀인지 갸웃거리게 됩니다. 선후관계가 뒤바뀐 것으로 보입니다.
이건 제 생각입니다. 이들이 넷의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그들만의 연대, 계층을 형성해간 사람들인 것은 맞습니다. 당연하지요. 그리고 통신체, 초딩체, 오덕체를 사용하는 집단은 이후, "그런 투를 쓰지 않는 사람들"과 확연히 구분되기 시작해서 "더 이상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게 된 것"아닌가요?

이런 폐쇄성은 지적하신 특정 문화를 형성한 쪽에서 스스로 취한 태도이며, 이들보다 대부분 늦깍이로 통신환경에 진입한 "통신체 안쓰는 사람들"이 유배했다느니 쫓아냈다느니 할 계제가 아니라 봅니다. 오덕이나 된장에 관한 언급은 제가 모르는 문제니 넘어가겠습니다.

이의 4
'정상인','개념인'들은 처음엔 이들의 언어습관과 외형, 태도를 중점적으로 까기 시작한다.

이들은 비판을 통해 그 대상들을 특별한 집단으로 구분짓고 그들을 자신들의 가상의 분류에 편입시킨다. 그후 그 비판은 그들의 문화에서 그들 자체로 옮겨가고, 곧 이들을 자신들의 커뮤니티에서 배제하거나 그 성질을 거세해야 한다 말한다.(o) 그들은 이렇게 스스로 커뮤니티 내에 열등한 계층을 만들어냄으로서 자신들을 이들보다 우월한 '정상인' 이라는 허상의 계급에 편입시켰다.(p)

개별 커뮤니티나 게시판 사용규칙에서 이를 금하는 이유는 통신체를 저열한 계급적 표상으로 간주하기때문이 아니라 전체 커뮤니티의 전제 및 합의된 준칙에 반하기때문이죠.

"깐다"는 행위를 어떻게 보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홀홀단신으로 이질적인 집단 심부에 쳐들어가, 집단의 합의에 반하는 자신의 헤게모니를 설파하는 행위깐다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글쓰신 분도 아닐 거라고 믿습니다.
말씀(o)하신 바에 의하면, 독립된 크고 작은 개별 커뮤니티가 일방적으로 고유한 특성을 비판하고 비난받는 상황이 아니라, 한 커뮤니티 안에서의 집단 분화 현상을 지적하신 것 같아요.
평범한 교조주의적 망상가가 통신체나 오덕체 사용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말투가 왜들 그러시나 이새끼들아"하고 깽판치는것은 플레이밍의 일종입니다. 그럼, 평범한 통신체나 오덕체 신봉자가 일반회화체 사용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왜들이러냐능 말도못하냐능"이라고 깽판치는것도 마찬가지겠죠.

이미 얘기했듯이 저는 통신체 사용행위를 흡연행위와 동급으로 칩니다. 비유하자면 이래요.

건물내 금연이 일반화하기 전에도 흡연은 비흡연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전까지 흡연자들은 거리낄 것 없이 비흡연자들에게 원하지 않는 잔류물을 제공하며, 자유롭게 흡연할 권리를 누렸지요. 눈치껏 자제하지 않는 한 그랬어요.
세상이 바뀌어 건물내 금연이 당연시되고, 실내흡연은 지정된 구역에서만 가능하도록 바뀌었습니다. 근데 그것을 두고 흡연자들이 흡연구역에 "유배"되었다거나 "추방"당했다고 주장 하던가요? (할지도 모르겠네요.) 흡연자의 잔류물(담뱃재, 매연, 꽁초, 구취, 가래침)은 원래부터 불쾌함을 유발하므로 특히 비흡연자에게는 기피대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비판받음으로써" "담배질하는새끼들"이 된 건 아니란 말을 하고싶네요.(담배를 기호품으로 즐기시는 분들 죄송합니다. )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선택적으로 포기 가능한 개인의 취향은, 경우에 따라 제한받을 수 있다는 것이 현대사회의 기본합의죠. 그래서 담배처럼 제도권의 영향하에 놓이기 이전에, 통신체는 그 사용행위를 자발적으로 제한하는 문화가 정착된 거라고 봅니다.
말씀(p)하신 것처럼 열등계층을 만들어내고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려한 것이 아니라, 해당되는 집단을 "대상화"한거죠. 성질을 "거세하려 했다"는 것은 동의합니다. 적어도 해당 "커뮤니티 안에서는" 거세하려했지요.


맺음

저는 통신체를 씁니다. 제 블로그는 모든 말투를 쓸 수 있는 곳입니다. 지인들은 제 블로그에서 어떤 말투의 통제도 받지 않고, 누구도 비난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처음 방문하는 블로그, 커뮤니티, 기타 공간에서 그대로 하지는 않습니다. 초면인 사람에게 반말을 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통신체와 오덕, 된장질의 주체들을 대상화시키고 비판하는 행위를 계급갈등의 관점에서 바라보신 것은 신선한 떡밥(나쁜뜻은 아닙니다)이었으며 제한된 맥락에서는 타당한 주장이라고 봅니다. 다만 논거 불충분이나 사실관계 배제에서 대체로 초논리적 도약(...)을 더러 하신것 같아서, 몇 자 적어봤어요.


덧.
솔직히말하면 담배연기를 비롯한 흡연잔류물 싫습니다. 반경 수미터안의 흡연자가 배출한 담배연기가 호흡기를 통해 제 폐속에 침투할때 불쾌함을 느끼는 동시에 발생원을 배격하고 싶은 충동이 드는 건 사실이죠. 그래도 흡연자가 싫은 건 아니에요. 흡연행위가 인식되는 순간이 불쾌한거지.
글쓰신 분이 지적했듯이 원래 행위 비판으로 시작했다가, 인신공격으로 흐르는 양상은 넷상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이죠. 이건 통신언어행위에 대한 리액션과는 층위가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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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c84 | 2008/05/04 07:13 | 말과 글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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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NoSyu at 2008/05/04 08:27
해당 글을 먼저 읽어보고 한RSS로 이 글을 읽었기에 이해가 빨랐습니다.^^;;
정상인.. 정상인.... 하는 얘기를 보니 문득 전에 제가 본 글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사실 몸이 '정상'인 사람은 자신을 정상이라고 인식할 필요가 없다.
http://nosyu.egloos.com/3284933

(방금 트랙백을 날린 분의 글에 댓글을 달다가 혼란이 왔습니다.ㅜㅜ
여기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롱신 at 2008/05/04 11:45
안녕하세요. 밸리에서 보고 들어왔습니다.

어제 원글을 보고 버엉~ 하더랬죠. 인과관계를 거꾸로 바꿔놓고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삼았으니까요 -_-;;

게다가 통신체 유무와 관계없이 개념인(아마 글쓴이 본인과 의견을 달리 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인가봅니다)을 까기 위해 쓰신거 같더라고요;(요런것도 제가 글쓴이를 까는걸까요)

시원하게 정리 된 글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어요.
Commented by Mizar at 2008/05/04 12:18
통신체를 공공장소에서의 흡연행위에 비유한 것은 참으로 멋진 비유인 것 같습니다. 확장한다면 온라인에서의 모든 민폐행위도 그에 비유할 수 있겠지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Commented by 루시앨 at 2008/05/04 12:5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다만 몇가지 반론이 있어서 리플을 달게 되었습니다.

이의1에 대한 반론1. 물론 연구가 있었다는 팩트에 있어서는 imc84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원 글에서의 논점은 구별짓기(부르디외)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의1에 나온 원 글의 인용 명제들의 주체를 "까는 사람들"(구별짓는 사람들)로 한정해 이해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보여집니다.

더불어, "해야 마땅하다"고 간주하신 것은 잘못 읽으신것 같은데, 더 정확하게는 "규제하려면 (연구해야) 마땅하다" 입니다.

또한, 마지막에 " 통신체 옹호주장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통신체 사용의 정당함에 대하여 얼마나 어떻게 증명해왔습니까?" 라는 문장은 조금만 비틀면 다른 소수자들에 대한 문장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유태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자신이 우리 위대한 게르만 인과 동급이라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어떻게 증명해왔습니까?" 라던지,
"흑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흑인이 인간이라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어떻게 증명해왔습니까?"라고 바꿔놓고 생각해볼 수 있겠죠.

통신체 사용행위를 흡연행위와 동급에 놓고 생각하신건 참으로 적절한 비유입니다. 동시에 흡연에 대한 사회적 규제의 역사와 비교해 볼 수도 있겠군요. (흡연은 약에서 기호로, 그리고 유해물질로 변해왔지요.)

이의2에 대한 반론2.

규제의 의미를 "정책"으로 대치하셨는데, 만약 그 정책이 일반적인 의미의 국가 정책이 아닌, 커뮤니티의 정책으로 이해한다는 전제 하에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사실, 이 논의는 법에 대한, 또한 사회에 대한 오래된 논쟁의 재탕이지요.)

이론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은 "합의"를 통해서 자연권의 일정 부분을 양도하는 대신 "시민"으로서 기능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국가가 갓 태어난 아기에게 "080502-4293821, 너는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다음과 같은 종류의 법을 따라야 한다. (해놓고 헌민형+4법을 좌르륵 읽어준 뒤) 자, 이 법을 지킬것을 서약하는가? 서약하지 않는다면 너는 추방이다!" 라고 하진 않죠 ^^;;;;

하지만, 이런 명시적인 합의 대신, 암묵적 합의를 넣으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버스정류장을 생각해 봅시다. 사실 나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누구와도 아는 사이가 아닙니다. 하지만 버스를 탈때 무의식적으로 줄을서서 타게 됩니다. (물론 출근시간대엔 않그러죠-_-;;^^;) 그럼 나와 버스정류장의 사람들 간에는 합의가 있는 것일까요? 없는 것일까요? 다시말해서, 이 사람들을 하나의 사회로 볼수 있을까요?

보통 이러한 형식의 암묵적 합의, 즉 우리가 한 사회 내에서 "객관적"이라고 보는 어떤 것이 바로 논의의 대상이 되는 "합의"인 것이죠. 합의의 종류는 언어, 행위양식, 감정표현 등등 다양합니다. 문화 그자체라 봐도 무방하죠.

문제는 이것이 암묵적이고, 불확정개념에 의지하였기에, 또다른 "합의"가 형성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고, 여기서 논하는 주제는 그 "합의" 간의 다툼, 달리 말하면 정상문화와 반문화간의 다툼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죠.

여기서, 반문화가 하나의 "합의"를 깼다는 이유로 규제하는 측과 규제당하는 측의 투쟁을 "원론적으로 (다 들어보고 판단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이유가 규제의 "정당화"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이의3에 대한 생각3
이부분은 동의합니다만, 약간 동태적 시각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반문화는 반문화가 아니었습니다. 원글에서 나왔듯이, 통신체는 원래 접속 시간을 줄이기 위해 나온 것이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조금 다른 의미(문화의 파괴, 언어의 파괴)를 갖게 된 것은 인과 관계를 따질 수 없는 문제입니다. 다른 의미를 띠게 만드는 것은 통신체를 사용하는 사람이 "자신과 남을 구분지어서" 생긴 문제일수도 있고, 혹은 "그들을 구분지어서 배제하려는" 사람일수도 있으며, 대개는 그 현상으로 인해 "동시에" 의미의 분화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이의4에 대한 반론3

"개별 커뮤니티나 게시판 사용규칙에서 이를 금하는 이유는 통신체를 저열한 계급적 표상으로 간주하기때문이 아니라 전체 커뮤니티의 전제 및 합의된 준칙에 반하기때문이죠."

이는 위의 반론2와 연결됩니다. 동시에 저로서는 이의4가 원글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동어반복을 하는 것이라 봅니다.

원 글은 조금 다르게 이야기 하면"왜? 그런 합의와, 준칙이 생긴거지?"를 묻고 있고, 여기에 대해 "그건 합의된 준칙에 반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리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의는, 본격적인 (인터넷 상의) 문화에 대한 계몽주의(합의를 어겼다!) 대 낭만주의(그럼 그 합의가 뭐길래?)간의 충돌이라고 보여집니다. 저는 관찰자적 입장이기에(물론 제가 관련되면 상황에 따라 바뀌겠지만) 두 입장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다만 반대추를 넣어야 할 것 같아서 리플을 달게 되었습니다.

남의 블로그에 긴 리플 남긴것 죄송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좋은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Commented by imc84 at 2008/05/04 15:10
Nosyu << 일부러 '정상인'이란 표현을 피하려니까 좀 어려웠습니다. Nosyu님의 좋은 의견 기대할게요~

롱신 << 반갑습니다. 제가 열심히는 썼지만 그리 잘 정리된 논리를 펼쳤다고 자신할 수는 없네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논박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Mizar << 비유가 괜찮았다시니 다행이군요^^(보통 반론이 제기될 때 논리를 빗댄 비유나 모델의 허점을 공격당하는 경우를 많이 봐와서). 그간 공감에 올라온 Mizar님의 글을 적잖이 본 것 같은데 제 글맡에서 뵙게되어 반갑습니다.
Commented by Mizar at 2008/05/04 16:02
앗...
저는 그냥 변방에서 조용히 블로깅을 하는 사람일 뿐인데 제 글을 봐주셨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그나저나 저 비유는 개인적으론 상당히 절묘하다고 생각되어서 언젠가 비슷한 글을 쓰게 되면 한 번 써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혹시나 그 때를 대비해서 미리 인사드리겠습니다..^^
Commented by imc84 at 2008/05/04 16:27
루시엘 << 반론에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길어지면 트랙백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일단은 의견자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반론1-1단락 //"연구가 있었다"는 팩트는 말씀하신 대로, 원 글의 논점과 다른 문제입니다. 인정합니다만, 글쓰신 분의 용어 선택은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뭐 '연구'씩이나 필요한가요? 기껏해야 '까는' 건데.)

반론1-2단락 //"규제하려면 (연구해야) 마땅하다" 이것이라고 지적하셨길래 저도 제가 쓴걸 다시 읽어봤습니다(...;). 제가 쓴 말과 고쳐주신 말이 차이가 있는지 제 능력으론 잘 모르겠습니다. 전 같은 뜻으로 썼는데 :) 표현이 어눌했나 봅니다.

반론1-3단락 //네. 조금만 비틀면 소수자들에 대한 적극적 탄압의 메시지가 되는군요. 저는 그런식으로 비유된다면, "종족, 출신, 성별, 신체 및 정신적 장애, 기타 모든 종류의 차별요소와 같이 개인의 선택이 개입할 수 없는 부분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반론하겠습니다.
그보다 좀 더 파렴치하고 저열한 비유는 이런 것입니다. "지방민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이 쓰는 말이 우리 위대한 서울시민의 표준말과 동급이라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어떻게 증명해왔습니까?" 라든지, "한국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이 쓰는 말이 우리 위대한 팍스아메리카의 인터내셔널 잉글리시와 동급이라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어떻게 증명해왔습니까?" 정도지요. 허허.
어쨌든 저는 통신환경의 "말투"란 것이 전적으로 개인의 취사선택에 달린 문제로 보고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의제로 볼 여지는 적다고 생각해요.

반론2
이 부분은 저도 충분히 생각하고 쓰지 못한 것 같군요. 제 글에서 개념적으로 규제와 정책을 정확히 가려 쓰지는 않았습니다. 지적하신 부분은 유효할 것입니다.
전체 구성원이 단일한 목표(버스정류장 모델의 목표 : 모든 구성원이 빨리 버스에 타는 것)를 지향하는 무척 단순화된 사회죠.

제 비유인 도로교통법 규제하의 운전자 사회에서는 목표가 두 가지입니다. 구성원들이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 우선목표이고, 우선목표를 침해받지 않는 한 "신속"한 통행을 보장받는 것이 차선목표입니다.
이 환경이 법이 아니라 강제력 없는 관습이라고 생각해보면, 사람들 대다수가 우선시하는 가치가 "안전"이기때문에 "신속"을 우선시하는 다른 집단의 출현은 반가울 수 없는 것입니다. 위협받는 기존 가치가 좀더 상위의 공익이라고 합의된 것이니까요.

규제의 정당함을 주장하기에 앞서, 가치의 우선순위가 뒤집힐 때 사회적 손실이 일어나는 상황은 막아야만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죠. 이 경우 "신속함"을 우선시하는 이들이 "안전"을 우선시하는 이들을 설득해야 하는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규제받을 정도로 "안전"을 위협하기 이전에, "신속"을 강조해도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고 설득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반론 1-3 부분을 다시 읽어주시면 좋겠네요.

그 설득의 결과가 문화건, 규제건, 정책이건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일상어투의 가치가 통신체보다 상위에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론3
마무리가 부실했네요. 지적하신대로입니다. 어떤 과학적 연구결과에 근거해 초창기 그 다양한 커뮤니티와 포털에서 통신체를 금하고 쓰지말자는 캠페인이 일어났다고 볼 수는 없지요. 하지만 그 인식의 틀은 널리 채택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원래 속했던 현실사회의 질서를 온라인 공간에 재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이 과정을 "합의된 준칙"이라고 주장했으면 잘못이지만... 통신체의 태생적 배경이 기술적 제약이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도 초고속인터넷과 함께 기술적 제약은 해소되고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이 극적으로 유입되면서 자연히 사라지는게 마땅한 "낡은 문화"가 되었다고 보는게 타당하지않나 싶어요. 이 부분은 한참 길어질 수 있는 얘기니 접어두지요.


긴 덧글 감사합니다. 계몽주의 vs 낭만주의라... 재미있네요 ^^;
Commented by imc84 at 2008/05/04 16:32
Mizar << 놀라실것 까지야.. 저 비유는 GPL를 채택한 거라서 제 이름 정도 넣어주시면... 농담입니다. 인용된다면 영광이군요. 다음에 글을 보면 덧글을 좀 남기겠습니다 :)
Commented by xzxz at 2008/05/04 17:30
아.웃겨죽네.ㅜㅜ
Commented by 루시앨 at 2008/05/04 19:25
폐가 되면 어쩌나 했는데 좋게 보아주시니 다행입니다 :)

많은 부분이 저 역시 동의하는 부분이고, 다만 반론1-3단락과 반론2단락에 대해서는 부연하고 싶습니다. ^^:

반론1-3에 대한 부연 1

지금 다시 읽어보니 아무런 의미 설명 없이 문장 구조에서 단어만 비틀어써서 혹시라도 기분상하셨으면 죄송합니다. 비유가 어느정도 수사법을 깔고 있어서, 또한 저 자신이 그저 비유만 덩그러니 던져놓아서 더더욱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배제 그 자체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언어-게임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어떤 언어-게임에 대해서는 배척하는 반면, 어떤 언어-게임에 대해서는 그것을 존중합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1. British English, 한국어로 말을 걸때와, 2. 슬랭, 통신어체로 말을 걸때, 혹은 3. 괴성, 언어로 인지되지 않는 소리로 의사전달을 표현할때 우리는 각각에 대해 다르게 반응합니다.

1번의 경우는 정상적인 의사소통으로 기여하고, 3번의 경우에는 (그것이 우리를 고성방가등으로 위협하지 않는 한) 그저 잠깐의 관심을 가질 뿐입니다. 하지만 2번의 경우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배제하려 합니다.

개인이 선택할 수 있든 그렇지 않든, 하나의 게임-발화가 왜 배제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지적하듯, 그것이 "정상" 언어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많이 하죠.

여기서 언어의 사회성(변화하는 언어로서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우선 중간 결론으로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정상 언어는 끊임없이 변하고 생성하고 소멸하면서 유지되는데, 왜 통신어체로의 변화는 배제되어야 하는가?"

여기에서 반론 2에서 지적하신 내용과 이어집니다. 반론 2에서, 모델을 들어 설명해 주신것과 같이, "설득"을 통해야 한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과연 언어-게임이 설득이 되는 것일까요?

굳이 일제시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언어야 말로 한 문화의 핵심이라 볼 때, 언어에 대해서 우리가 "설득"할 수 있을까요? 즉, 그들에게 문화를 바꾸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건 사실상 "개종(Conversion)"하라는 말이 아닐까요?

다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통신어체"문화를 놓아두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닙니다. 어쩔수 없이, 문화와 문화 간에는 "소통"은 되어도 "통약"은 불가능하니까, 정상 문화의 사람들에게 그들을 "소수자"로 여겨서 놓아두라고 말하는 것은 "반문화 애들이 전도하는건 막지 않겠삼, 단 넌 좀 힘쎄니까 전도하지 마삼"이러는 것과 똑같겠죠. 언젠가 정상문화가 반문화의 지위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의미에서 이 댓글이 재반론이 아닌 부연인 것이겠죠. ^^;

Commented by imc84 at 2008/05/04 20:47
루시엘 <<

먼저
1. 왜 통신어체로의 변화가 배제되어야 하는가?

저는 '파괴'니 '오염'이니 하는 수식은 "언어"라는 대상에 대해서 쓰지 않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언어라는게 복잡성이나 불규칙성이 증감하는 거대한 구조체에 불과할 뿐이니까요. 파괴나 오염이란 표현은 편향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현상에 대해 가치판단이 가미된 것이죠.
가상공간에서 보편적 말투는 특별한 노력이 없이 '자연'상태로 구현됩니다. 그러나 통신체로 대표된 일련의 '표현방식'들은 여러모로 구현자의 감각과 기지가 발휘되어야만 하죠. 예, 제 관점에서 볼 때 그건 "기계적인 수사법"의 하나일 뿐입니다.


1. 게임-발화가 왜 배제되어야 하는가? 에 대한 제 생각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정상 "언어"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언어를 표현하는 "기존"의 게임-언어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드신 것중 2번이네요.)
예컨대 기원에서 바둑을 두는데, 상대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자기 임의대로 알까기를 시작"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기원에서 실제로 알까기를 금지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알까기를 하고 싶다면 알까기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친구를 데리고 기원에 가면 될 일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대국을 방해해서는 안 되겠지요.

2. 언어-게임이 설득이 되는 것인가?
네. 저는 못할건 없다고 봅니다. 저는 누군가의 언어-게임의 룰을 설득하는 것이 "개종"에 이르는 강압을 요한다고 보지는 않아요. 제가 이야기하는 "설득"이란, '당신의 룰을 파기하라'가 아닙니다. '나의 룰도 수용하라'지요. 실제로 다들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요? ^^

아쉽지만 제가 비트겐슈타인에 무지한 관계로 그럴듯한 변주를 해 드릴 수는 없겠군요 :) 한편 "언어가 한 문화의 핵심"이라는 것에는 완전히 동의합니다. 저는 언어-문화결정론자니까요.(농담임)
다만 저는 여기서 논의한 '언어'를 "그 표현형식과 태도"라는 하위 분야로 인식하고 전개했음을 밝혀둡니다.
Commented by 루시앨 at 2008/05/04 23:06
잘 보았습니다. :) 들어주신 두가지 모두 동의합니다. 두번째에는 약간의 다른 생각이 있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링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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