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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최만리와 세종의 논박

최근 방송을 시작한 대왕 세종과는 아무 상관 없음.

최만리: 신라의 설총(薛聰)이 만든 이두(吏讀)는 비록 거칠고 촌스러우나 모두 중국에서 통행하는 글자를 빌어다가 어조사를 적는 데 이용하므로 한자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급 관리나 하인들이 이두를 익히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한문으로 된 여러 책을 읽어서 한자를 대강이라도 익힌 다음에야 비로소 이두를 사용하게 됩니다. 즉 이두를 사용할지라도 반드시 한자에 의거하여야만 뜻을 통할 수 있으니 이두 때문에 한자를 공부하여 알게 되는 사람이 상당히 많고 따라서 학문을 진흥시키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잠깐 한자혼용론 주장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중략하고 세종의 논변.
세 종: 그대들이 운서(韻書)를 아는가 사성(四聲)과 칠음(七音)을 알며 자모가 몇인지 아는가 우리나라의 한자음은 마땅히 중국의 음과 부합되어야 할 것이나 오랜 세월 동안 말해지는 사이에 자음과 모음이 저절로 어음에 이끌렸으니, 이것이 곧 한자음이 역시 따라서 변한 까닭이다. 비록 그 음은 변했더라도 청탁이나 사성은 예전과 같을 수 있을 것인데 일찍이 그 바른 것을 전해 주는 책이 없다. 그래서 어리석은 스승이나 일반 선비들이 반절법도 모르고 자모와 운모의 분류 방식도 모르고 혹은 글자 모습이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음으로 하고, 혹은 앞 시대에 임금의 휘자이기 때문에 피하던 것으로 인해서 다른 음을 빌려 쓰기도 하고, 혹은 두 글자를 합해서 하나로 하기도 하고, 혹은 한 음을 둘로 나누도 하며, 혹은 전혀 다른 글자를 빌려 쓰기도 하며, 혹은 점이나 획을 더하거나 덜며, 혹은 중국 본토음을 따르고 혹은 우리 나라 음을 따라서 자모와 발음, 청탁, 사성이 모두 변하였다. 만약 내가 이 운서(韻書)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 누가 이를 바로잡겠는가

밑줄 그은 것과 우리나라가 지금 처한 상황을 교차하여 생각해보면 절로 웃음이 터져나온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기는 십몇년씩 배우고 앉았는데 발음 기호와 실제 발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각종 매체에서 수입한 외래어를 익숙하게 쓴다. 영어를 그리 배우니까 토익은 만점을 받아도 입으로는 한 마디도 못 지껄이는 일도 생기고 그런 판인데...
저때 선비들이 책만 가지고 한문을 공부한것마냥 한자의 원음을 가리지 못하고 의미만을 탐구하여 결국 중국 사상과 이론에는 통달하여도 중국어의 본체에는 눈꼽만치도 접근하지 못하고 오히려 한자의 발음체계가 한국말에 고착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즉 세종이 추진하고자 했던 정책은 요즘으로 치면 영어 원어민 발음교육 강화 정도 되시겠다.

난 최만리가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고자 상소를 올리고 극렬히 세종의 정책을 비판한 줄 알았는데 시기상으로 창제는 이미 이루어졌고 세종이 이를 통해 운서 편찬사업을 진행하고 있던 것을 비판한 것이었다.
지금과 저 때가 상황이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런 게다. 기존의 한자 표기를 훈민정음으로 쓰면 발음기호 구실을 해서 좀 더 원어에 가깝게 읽을 수 있지만, 자꾸 새로운 영어를 한글로 표기하면 원어 발음에서 멀어질 뿐만 아니라 원래 우리말에도 없는 어휘가 늘어나 후학들의 삽질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최만리 등이 상소를 올리게 된 것은 앞서 보았듯이 『고금운회거요』를 번역하여 한글로 음을 달아 펴 내도록 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급작스럽게 운서를 바꾸어 편찬하려는 것을 반대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세종은 그대들이 운서를 아느냐 하고 내가 아니면 누가 이것을 바로잡겠느냐고 하였다. 『고금운회거요』에 어떠한 한자음을 붙였는지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체로 다음 해인 1447년에 간행된 『동국정운』의 한자음과 거의 같을 것으로 짐작된다. 즉 최만리 등은 당시의 현실 한자음을 바꾸어 중국 운서에 맞추려고 하는 것에 대해 반대를 표명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동국정운식으로 한자음을 개신하려는 세종의 정책은 실패하였으니 최만리 등의 주장이 옳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한글의 우수함을 직시한 것은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언문은 언문일 뿐이라며 신묘한 잔재주에 불과하다 평하였으니 당대의 평범한 인식을 벗어나지 못한 인간이었을 테다. 상소에서 직접 반대한 것은 운서편찬 사업이지만 한글을 야멸치게 깔보고있음이 면면에 드러난다.

이상 최만리와 세종의 가상적 발언은 디지털 한글박물관 - 역사관 - 세종과 최만리에서 발췌.

덧. 인문학(언어) 밸리도 없고 해서 아쉬운 김에 세계밸리에 보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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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NoSyu 2008/01/08 19:53 # 답글

    재미있네요.^^
    하지만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 아쉽습니다.ㅜㅜ
  • imc84 2008/01/08 20:07 # 답글

    요약하면, 세종이 시행을 명한 것(최만리가 반대 상소를 올린 계기)은

    한자로 된 경서를 익힌 선비들은 이미 한국식 한자발음(현대와 거의 동일함)에 익숙한데,
    세종이 이것을 교정(중국어 발음을 본토에 가깝게 재현)하겠다고 운서(한자 발음기호 책)를 "훈민정음"으로

    편찬하라고 한 겁니다. 물론 여기서 은 요즘 말로 "천한 듣보잡 애들 장난글씨" 정도.


    음 예를 들어 보죠. 요즘 한국에서 영어 원서로 공부 많이 하잖습니까? 그것을 소리내서 읽는다고 생각해 보죠. 이공계 인문계 할 것 없이 한국적인 발음이 나올 확률이 지극히 높습니다.

    그것을 교정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국제음성기호"로 표기되는 "영어 읽기 표준안"을 정리하라고 하는 겁니다. 저 때는 한글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 정도로 낯설고 실생활에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죠.
    (더불어 그 때 경서의 한자발음은 요즘 영어 읽기처럼 원래발음 개무시하고 한국어 발음에 맞춰져서 읽힌 것입니다.)
  • NoSyu 2008/01/09 07:27 # 답글

    아.. 조금 다른 말이 되겠지만
    지금의 베이징을 한자로만 읽으면 북경이라 읽히는것처럼
    그 발음이 달랐기에 베이징이라는 말을 할 수 있도록 훈민정음으로 편찬하려 한 것이군요.
    그렇다면 일본어에서 한자 위에 히라가나가 붙는 것과 비슷한 의미인가요??
    (아.. 조금 다르겠군요.
    거기서는 자신의 발음을 읽기 쉽게 일종의 주석을 단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훈민정음은 이미 만들어있고,
    그 사용을 양반이 생각하기에는 쌍놈만이 쓰는 훈민정음을
    양반만(?)이 쓸 수 있는 한자에 적용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 표출인가요??~_~
  • imc84 2008/01/09 07:56 # 답글

    제가 볼땐 그랬을 것 같습니다. 상소문 자체에서는 객관적으로 볼때 단지 현행 발음체계의 전복이라는 실효성으로 반박하고 있지만, 어조에서 드러나듯이 천한 글을 제도화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분명히 있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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