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한국말의 움직임 시험이라 간단히 정리해 봄.
1. 훈민정음 기원설에서 언급하는 고대문자 가림토입네 어쩌네 하는건 듣보잡이다. 이게 있었으면 한자를 뭐하러 쓰냐 쯧쯧.
2. 임신서기석도 비슷하게 듣보잡이긴 한데, 한자기원설에 연관해서 할 말이 많음. (아 이건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한자를 오로지 중국에서만 만들고 쓸 줄 알았다는 역사적인 근거를 알고 계신 분은 좀 알려주세요. 이게 통설이라는데.) 우리 교수님은 다른 입장이라 수업중에 안 가르쳐줌.
한편, 중국어의 순서대로 쓰인 보통 한문체와 달리 임신서기석은 해독할 때 문자의 순서가 한 방향으로 흐른다. 즉 한국말 어순으로 쓰인 한문체 되시겠다. 임신서기석의 내용을 보면 두 사람이 경전을 공부하기로 임신년에 서약을 하고 증표로 남긴 것이다. 경서를 공부할 정도의 지적수준이 되는 사람들이 중국어순을 따르는 한문체를 몰랐을리가 없다, 는 것을 근거로 우리나라에서도 어쨌든 소수학설이긴 한데, 임신서기석은 고대에 우리나라에서도 한자를 독자적인 표기 체계로 사용했다는 드문 근거가 된다. 임신서기석이 만일 당시에 매우 보편적인 표기법이었다면, 이것을 읽을 때는 소리가 아니라 완전한 새김(뜻)으로만 읽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3. 임신서기석 이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첫 단계는 향찰 표기. 현전하는 향가를 표기한 체계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향찰 표기의 한자 해독 방법은 새김(뜻)이 있고 소리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한자 읽기와 달리 새김으로 읽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시기.
한편 이 시대에는 고유어를 표기할 문자가 달리 없었기 때문에 한자를 음차해 쓸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이 음차한 표기는 물론 뜻을 무시하게 된다. 더러는 뜻까지 고려할 경우도 있지만.
향찰은 향가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 이름이나 땅 이름에서도 전한다. 삼국사기의 예가 있는데 귀찮으니 자세한 사항은 생략한다. 지금까지 전하는 것도 있다. "대전"은 원래 "한밭"이었고 "이리"는 "솝리(솝>속:inside)를 裡里라고 적었다가 소리읽기로 바뀐 거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고유어가 사라졌다.
4. 향찰과 비슷하나 좀더 정리된 형태로 공문서에 적용한 것을 이두 표기라 한다. 전하는 문헌은 대명률직해 따위가 있다. 명나라의 법률을 수입했는데, 글이 좀 낮은 관리들이 읽도록 한 것이다. 원래 한문투인 문장을 몇 번씩 끊어서(우리가 명심보감이나 논어 따위를 공부할 때 그랬듯이) 구나 절 단위 끝에 문법형태소를 집어넣은 거다.
번역체 공문서다보니 한문에서 쓰는 낱말을 그대로 쓴게 많다. 거기에 가끔 우리말 체언이 들어가고 문법형태소가 끼어있는 형태다. 즉 향찰과 견주면 새김으로 읽는 비율이 좀 낮아졌고, 소리로 읽는 비율이 높아졌다. 생활속의 어휘도 이처럼 변해가서, 고유어를 쓰지 않고 한자말을 쓰는 경향이 한참 더 나아갔으리라 볼 수 있다.
5. 구결은 이두에서 더 간단하게 나아간 것이다. 원래 입+겿(덧붙는 것)이란 뜻인데 이도 음차표기(겿>결)한 것이 구결이라 굳어졌다. 훈민정음 창제될 즈음 해서까지 쓰던 것인데 형태가 거의 정리되었던 모양이다. 체언류는 그대로 한자말을 쓰고 조사나 어미 등을 한자 소리를 빌어서 적은 것이다. 이두나 향찰보다는 형태가 어느 정도 규칙성을 띠었던 듯하다.
어쨌든 훈민정음 창제후 대체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추해보건대 가장 단순화한 문법형태소의 묶음이 구결이고, 일상적인 낱말들은 거의 한자말로 대체가 완료된 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양반계층에 한해서지만 민간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겠지. 이두와 견주면 역시 새김으로 읽는 비율이 낮아졌고, 소리로 읽는 비율이 높아졌다.
6. 구결과 큰 차이는 아닌 듯하지만 더 나아간 줄임표기가 있다. 이 원리를 들여다보면 자획을 줄인 것으로 일본어 가타가나를 만든 요령과 똑같다. (실제로 가타가나와 형태가 일치하는 것이 더러 있고, 형태에 소리까지 일치하는것이 소수 있다.) 이 단계는 이미 한자를 소리글자에 가깝게 전용한 것이다.
7. 현대국어에서의 한자는 소리글자 전용화의 막장...아니 극단을 보여 준다. 예전엔 국한문혼용병서 표기법이 일반적이었기때문에 구결을 훈민정음으로 대체한 것이나 별 다름이 없었는데, (요즘도 나온지 좀 오래된 책을 찾아보면 쉽게 볼 수 있다) 이제 한글전용을 신문에서 도입한지도 꽤 된다. 즉 모든 현대국어의 한자는 '소리로만'읽힌다. 그러므로 국어 낱말로 완전히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8. 한자나 그 약체자가 우리 문자가 되는데 실패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한자 뜻읽기로 시작해서 점차 소리로 읽게 되고, 낱말을 바꿔 가면서 뜻글자 본래의 활용에 비해 얻는 이득이 적었다. 그리고 억지로 쓰긴 썼으되 우리말 토씨에서는 소리글자 체계에 가깝게 바꾸어가면서, 한자 읽기 자체도 뜻보단 소리에 의지하게 되었다.
같은 과정을 밟았을 일본은 이 소리글자 체계를 정착시켰는데 왜 우리말로는 정착되지 않았느냐? 겁나 간단하다.
우리말은 음절단위 쓰기인 모아쓰기가 정착은 되었으나, 언어구조상 음소가 매우 다양하게 발달해 있다. 초중종성 각자의 조합을 현대국어표기에서는 11172개로 보고 있는데(물론 일상어로 쓰는 음절은 1천여개. 그러나 고대국어에서는 초성에 자음을 연달아 쓰는 표기가 무척 많았는데 이것 보면 작살난다. 현대국어에서 이걸 다 인정했으면 2만자도 모자를걸.) 이걸 소리에 따라 일일이 한자 약체로 쓴다? 차라리 상용한자 외워서 쓰고 말겠다. 전국민이 세종대왕과 같은 천재 음성음운학자였으면 구결을 음절이 아니라 음소글자로 만들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 한글은 창제되지 않았겠지만... 하여간 허벌나게 뻘짓거리...아니 효율이 떨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어 표기 음소글자의 지존이신 훈민정음에 자리를 내어 줄 수밖에.
1. 훈민정음 기원설에서 언급하는 고대문자 가림토입네 어쩌네 하는건 듣보잡이다. 이게 있었으면 한자를 뭐하러 쓰냐 쯧쯧.
2. 임신서기석도 비슷하게 듣보잡이긴 한데, 한자기원설에 연관해서 할 말이 많음. (아 이건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한자를 오로지 중국에서만 만들고 쓸 줄 알았다는 역사적인 근거를 알고 계신 분은 좀 알려주세요. 이게 통설이라는데.) 우리 교수님은 다른 입장이라 수업중에 안 가르쳐줌.
한편, 중국어의 순서대로 쓰인 보통 한문체와 달리 임신서기석은 해독할 때 문자의 순서가 한 방향으로 흐른다. 즉 한국말 어순으로 쓰인 한문체 되시겠다. 임신서기석의 내용을 보면 두 사람이 경전을 공부하기로 임신년에 서약을 하고 증표로 남긴 것이다. 경서를 공부할 정도의 지적수준이 되는 사람들이 중국어순을 따르는 한문체를 몰랐을리가 없다, 는 것을 근거로 우리나라에서도 어쨌든 소수학설이긴 한데, 임신서기석은 고대에 우리나라에서도 한자를 독자적인 표기 체계로 사용했다는 드문 근거가 된다. 임신서기석이 만일 당시에 매우 보편적인 표기법이었다면, 이것을 읽을 때는 소리가 아니라 완전한 새김(뜻)으로만 읽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3. 임신서기석 이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첫 단계는 향찰 표기. 현전하는 향가를 표기한 체계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향찰 표기의 한자 해독 방법은 새김(뜻)이 있고 소리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한자 읽기와 달리 새김으로 읽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시기.
한편 이 시대에는 고유어를 표기할 문자가 달리 없었기 때문에 한자를 음차해 쓸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이 음차한 표기는 물론 뜻을 무시하게 된다. 더러는 뜻까지 고려할 경우도 있지만.
향찰은 향가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 이름이나 땅 이름에서도 전한다. 삼국사기의 예가 있는데 귀찮으니 자세한 사항은 생략한다. 지금까지 전하는 것도 있다. "대전"은 원래 "한밭"이었고 "이리"는 "솝리(솝>속:inside)를 裡里라고 적었다가 소리읽기로 바뀐 거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고유어가 사라졌다.
4. 향찰과 비슷하나 좀더 정리된 형태로 공문서에 적용한 것을 이두 표기라 한다. 전하는 문헌은 대명률직해 따위가 있다. 명나라의 법률을 수입했는데, 글이 좀 낮은 관리들이 읽도록 한 것이다. 원래 한문투인 문장을 몇 번씩 끊어서(우리가 명심보감이나 논어 따위를 공부할 때 그랬듯이) 구나 절 단위 끝에 문법형태소를 집어넣은 거다.
번역체 공문서다보니 한문에서 쓰는 낱말을 그대로 쓴게 많다. 거기에 가끔 우리말 체언이 들어가고 문법형태소가 끼어있는 형태다. 즉 향찰과 견주면 새김으로 읽는 비율이 좀 낮아졌고, 소리로 읽는 비율이 높아졌다. 생활속의 어휘도 이처럼 변해가서, 고유어를 쓰지 않고 한자말을 쓰는 경향이 한참 더 나아갔으리라 볼 수 있다.
5. 구결은 이두에서 더 간단하게 나아간 것이다. 원래 입+겿(덧붙는 것)이란 뜻인데 이도 음차표기(겿>결)한 것이 구결이라 굳어졌다. 훈민정음 창제될 즈음 해서까지 쓰던 것인데 형태가 거의 정리되었던 모양이다. 체언류는 그대로 한자말을 쓰고 조사나 어미 등을 한자 소리를 빌어서 적은 것이다. 이두나 향찰보다는 형태가 어느 정도 규칙성을 띠었던 듯하다.
어쨌든 훈민정음 창제후 대체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추해보건대 가장 단순화한 문법형태소의 묶음이 구결이고, 일상적인 낱말들은 거의 한자말로 대체가 완료된 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양반계층에 한해서지만 민간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겠지. 이두와 견주면 역시 새김으로 읽는 비율이 낮아졌고, 소리로 읽는 비율이 높아졌다.
6. 구결과 큰 차이는 아닌 듯하지만 더 나아간 줄임표기가 있다. 이 원리를 들여다보면 자획을 줄인 것으로 일본어 가타가나를 만든 요령과 똑같다. (실제로 가타가나와 형태가 일치하는 것이 더러 있고, 형태에 소리까지 일치하는것이 소수 있다.) 이 단계는 이미 한자를 소리글자에 가깝게 전용한 것이다.
7. 현대국어에서의 한자는 소리글자 전용화의 막장...아니 극단을 보여 준다. 예전엔 국한문혼용병서 표기법이 일반적이었기때문에 구결을 훈민정음으로 대체한 것이나 별 다름이 없었는데, (요즘도 나온지 좀 오래된 책을 찾아보면 쉽게 볼 수 있다) 이제 한글전용을 신문에서 도입한지도 꽤 된다. 즉 모든 현대국어의 한자는 '소리로만'읽힌다. 그러므로 국어 낱말로 완전히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8. 한자나 그 약체자가 우리 문자가 되는데 실패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한자 뜻읽기로 시작해서 점차 소리로 읽게 되고, 낱말을 바꿔 가면서 뜻글자 본래의 활용에 비해 얻는 이득이 적었다. 그리고 억지로 쓰긴 썼으되 우리말 토씨에서는 소리글자 체계에 가깝게 바꾸어가면서, 한자 읽기 자체도 뜻보단 소리에 의지하게 되었다.
같은 과정을 밟았을 일본은 이 소리글자 체계를 정착시켰는데 왜 우리말로는 정착되지 않았느냐? 겁나 간단하다.
한자는 낱자가 낱소리마디(음절)을 이루기 때문에 한자에서 갈라진 글자는 음절글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본말은 발음체계 자체가 자음과 모음이 거의 비등하게 나타나는 음절단위이다. 그리고 음절 표기에 필요한 낱자수가 백여개밖에 되지 않는다. 즉 한자에서 그정도만 따서 만들면 해결되는 것이다.
우리말은 음절단위 쓰기인 모아쓰기가 정착은 되었으나, 언어구조상 음소가 매우 다양하게 발달해 있다. 초중종성 각자의 조합을 현대국어표기에서는 11172개로 보고 있는데(물론 일상어로 쓰는 음절은 1천여개. 그러나 고대국어에서는 초성에 자음을 연달아 쓰는 표기가 무척 많았는데 이것 보면 작살난다. 현대국어에서 이걸 다 인정했으면 2만자도 모자를걸.) 이걸 소리에 따라 일일이 한자 약체로 쓴다? 차라리 상용한자 외워서 쓰고 말겠다. 전국민이 세종대왕과 같은 천재 음성음운학자였으면 구결을 음절이 아니라 음소글자로 만들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 한글은 창제되지 않았겠지만... 하여간 허벌나게 뻘짓거리...아니 효율이 떨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어 표기 음소글자의 지존이신 훈민정음에 자리를 내어 줄 수밖에.




덧글
->고등학교 교과서에선 삼한 시대의 유적에 나오는 명도전과 붓을 통해서 한반도에서도 중국과 교역이 있었고, 한자어를 썼을거라는 근거는 있심.
나머지는 내가 사학과 가서 알아볼게염.
(...라는건 제 멋대로 주장하는거고 사실 임신서기석 부분과 연계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언어 보조수단으로 한자를 쓴건 틀림없는데, 중국에서 중국말 순서대로 문장을 구성했듯이 임신서기석 보면 우리나라에서 우리말 순서대로 문장을 구성한 증거가 됩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점은 우리나라에서 일상적 문자체계로 한문이 매우 일찍부터 쓰였다는 것, 그리고 중국의 어법을 따를 필요가 없었다는 것(중국에서 만든 한자가 아니라 그저 "한자는 뜻글자로 존재"해왔고, 중국과 한국이 대등한 입장에서 이를 사용했으리라는 시각)입니다. 물론 이런 관점은 학계에서 인정되지 않고 있다는군요, 달랑 임신서기석만 극히 예외적인 자료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어쨌든 비슷한 예를 한번 들어보죠. 현대 한국어를 두고. 예전에 중국에서 한자를 들여왔듯이 요즘은 영어 어휘를 수입했다 이겁니다. 사람들은 일상어 "넥타이" "휴대폰" "빌지" 따위를 어떻게 생각할까 모르지만 미국 영어를 고수하는 시각에서는 이게 "브로큰잉글리쉬" 내지 "콩글리쉬"에 불과합니다. 틀린 거죠.
하지만 어차피 다른 언어체계 안에 외국어가 삽입되면 이미 현지화를 거쳐 '외래어'가 됩니다. 발음도 표기체계도 해당 언어에 맞게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말 발음으로 읽고 한글로 쓰는 컴플레인/클레임과 Complain/Claim이 같은 언어일리가 없지요. 원래 후자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즉, 누군가 "고객의 컴플레인에 대응하기 어려워"라는 넋두리를 했다 치면 이 때 "컴플레인"이 영어가 아닐뿐만 아니라 그 문장 자체가 영어가 아니므로 "Complain이라고 해, 발음이 그게 뭐니" 따위 지적은 다소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표현방식에 대해서 "영어 체계 기준에 입각한 개무시"는 전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이걸 지적하려면 이것이 "틀린 발음/어휘를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말로 해도 될 어휘에 고깝게 영어 주워섬겨 깝치기 때문"이어야 겠죠.
어쨌든 이런식으로 생산된 외래어들은 금세 일상언어체계에 편입되고 마땅한 대체어가 한동안 나타나지 않으면 급기야 신판 새국어사전에 오릅니다.
우리가 영어 낱말을 우리 어순대로 쓰면 순식간에 형편없는 문장(또는 문장 취급도 받지 못할 것)이 되고 맙니다. 한자는 영어처럼 읽는 소리와 어순까지 강요받지는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즉 우리말을 표기할 중립적인 문자체계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부분은 이런 점입니다.
"빌지" 이거 뭐임?
그냥 툭 떠오른 생각인데요
아무래도 한자가 중국 은나라의 갑골문자 이전에 기원된 것이라 그런거 아닐까요.
갑골문자에서 이미 한자의 형성 원리라든가 어순, 문법 같은 기본적인 틀이
거의 다 완비 되었으니까 그 전부터 한자가 발전되어 왔다 라는 논리가 아닐까 싶네요.
동아시아 문화권이 형성된 것이 한대 이후이고, 그 동아시아 문화권 형성의 중추에 있는 것이
한문의 사용 여부인 것(문화권 형성, 즉 당시로서는 선진 문물인 중국 문화 수용의 매개체가 바로 한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중국 한대 이후에서야 한문을 쓰기 시작했으니 기원 자체는 중국이고 뭐 들여와서 쓰는건 우리나라에서도 변형해서 쓸 수 있는 문제 아닐까 싶어요. 게다가 한대에는 현재 쓰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한자가 완성되었다고 하니까 중국에서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근데 중국에서만 한자를 썼다는것은 잘 모르겠네요;;우리나라에서도 썼는데;;;;킁;;
...이상 지난주에 읽은 동양사개론에 사론 조금 붙여서 끄적인것입니다;;틀려도 모름;;
...사실대로 말하자면 사론이 더 많아요
제가 좀 빼먹은 얘기가 있는데, 현대 한자문화권에서 쓰고있는 정서체 한자의 80%가 형성원리로 만든 글자잖아요. 나머지 20%에 상형, 지사, 회의, 가차 따위가 있고.
여기서 주목한 바는, 그러니까 저 80%의 한자 얘기가 아니라 그 기본자가 되는 최초의 "상형문자"와 "지사문자"를 중국에서만 만들었겠느냐 하는 얘기랍니다. 80%의 형성원리로 만든 글자들은 언어학적 근거가 있어서 명백히 중국에서 만든게 맞다고 인정하고요. 한자 전단계인 갑골문자 수준에서는 특정 언어에 종속되는 문자가 아니라 "기호"에 가깝다는 거죠. (픽토그램이랄까?) 즉 현대일본어에서 그네들 발음으로 한자를 읽는 방법이 있고, 우리나라에서 한자를 전래해주었을 때 읽는 방식(음가)가 공존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원래 한자를 '우리말로 읽는 방법'이 있었을거라는 얘기입니다. 중국 글자가 아니라, 그냥 같이 만들어 쓰는 글자였던 시대가 있었다면요. (뭐 좀더 얘기하자면 동이족 한자기원설까지 연결할 수 있습니다만 역사 젬병이고 이 블로그랑 별 상관도 없는 얘기이니 기각)